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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군

도주관

도주관

조선시대 청도군의 객사를 보러

조선시대 청도군의 객사와 민족의 자주의식을 고취하는 비석을 만났다.

민족의 자주의식을 일깨워주는 비석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해하는 것이고 화해를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다. 이를 우리의 자손만대에 경고 하노라“ 흥선대원군의 명령으로 세운 청도척화비에 쓰여진 말이다. 청도척화비는 조선 고종 3년의 병인양요와 동왕 8년 신미양요를 겪은 후 서양인들을 배척하고 그들의 침략을 국민들에게 경고하고자 대원군의 명령으로 세운 척화비이다.당시 서울 종로를 비롯해 전국의 중요한 도로변에 세웠지만 이후 청도 도주관 입구에 옮겨 두었다. 청도 도주관을 여행하는 분들은 이 비를 한 번 보시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도주관
도주관

청도 도주관은 1985년 12월 30일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212호로 지정되었다. 도주란 이름은 청도군의 다른 이름인데 도주를 따서 도주관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건립 시기는 조선 현종(顯宗) 때인 1670년경이며 현재 정청과 동헌만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에 화양면 사무소로 사용하는 동안 바닥과 벽을 개조하였으나 나머지 건물은 원래의 모습 그대로이다. 원래 서헌도 있었으나 파괴되어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민가들이 들어섰으며, 청도군이 소유·관리한다. 물정청은 정면 3칸, 측면 4칸으로 맞배지붕 형태의 익공집이며, 동헌은 정면 6칸, 측면 4칸이다. 정청과 동헌은 연결되어 있고, 정청의 지붕은 동헌의 지붕보다 높게 올렸으며, 기둥도 건의 폭에 비해 높게 하여 다른 건물들보다 위압감을 준다. 도주관 앞에는 위에서 얘기했던 역대 군수들의 선정비(善政碑)와 고종 때 흥선대원군의 명령으로 세운 척화비가 있다.

도주관
도주관
도주관

조선시대 객사였던 도주관

 

청도 도주관은 과거 당(政堂)에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시어 지방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에 배례하였고, 좌우 익사(翼舍)에 접객시설을 갖추어 이곳을 방문하는 관원이 머물 수 있도록 하였다. 여기서 객사는 객관이라고도 하는데 고려.조선 시대에 각 고을에 둔 관사를 말한다. 청도의 진산인 오산(鰲山)의 소구릉 등성이에 옛 동헌의 자취가 남아 있고, 그 우측 밑으로 객사가 서향으로 자리하였는데, 현 도주관은 정당과 우익사만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평삼문과 정당은 일축선상에 놓여 있고, 평삼문 우측에 5칸 곳간이 우익사와 대향하여 서 있다. 마당의 우측 담장쪽에 역대 군수들의 선정비(善政碑)가 옮겨져 있고, 우익사 뒤쪽에 일각대문을 내었다. 좌익사와 그 앞에 있던 관리사는 한일합방 후 철거되었다.

  • 주소 : [38334]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도주관로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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