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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시

대성동고분

대성동고분

우리나라 고대무덤의 변화를 알아보다

우리나라 고대무덤 형식의 변화와 한중일 문화교류를 알아보다

거대한 무덤지역을 방문하다

 

무덤이라 하면 뭔가 으스스한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김해 대성동고분은 으스스한 지역보단 역사적 가치를 가지기 때문에 오히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사적 제341호. 대성동 고분군은 경상남도 김해시 중심부에 있는 수장층의 무덤 떼로서 구지봉(龜旨峯)과 회현리 조개더미의 중간지점, 수로왕릉(首露王陵)의 서북쪽에 위치해 있다. 해발 22.6m의 북에서 남으로 L자형으로 길게 휘어진 낮은 구릉에 형성되어 있다. 이 지역은 2세기경부터 6세기경까지 장기간에 걸쳐 무덤지역으로 사용되었는데 거대한 무덤은 전망이 좋은 구릉의 정상부에 아래에서 위로 열을 지어 조영 되었다. 그러나 작은 무덤은 구릉의 사면에 무질서하게 만들어졌다. 이 고분군은 경성대학교박물관에 의해 1990년부터 1992년까지 모두 3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된 바 있다.

대성동고분
대성동고분

대성동 고분군에서는 구릉의 낮은 저지대로부터 널무덤[木棺墓]이 축조되기 시작하고 점차 구릉 위로 가까워지면서 덧널무덤[木槨墓]으로 발전하여 마침내는 대규모의 주부곽식덧널무덤[主副槨式木槨墓]이 축조되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널무덤은 이른 시기의 무덤으로 주로 구릉의 끝이나 평지에 만들어졌다. 대부분의 널은 판재를 이용해 짰다. 그러나 통나무널도 확인돼 창원 다호리의 통나무널과 비교된다. 덧널무덤은 널무덤을 파괴하고 축조되어 주로 구릉의 정상부에 분포한다. 2종류의 무덤이 시기를 달리해 축조되어 있다. 1~5세기에 걸친 지배집단의 무덤 자리로 고인돌을 비롯하여 널무덤(토광묘), 덧널무덤(토광목곽묘),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 등 가야의 여러 형식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구릉 주변 평지에는 1~3세기 무덤이 밀집되어 있고, 구릉 정상부에는 4~5세기 무덤이 밀집되어 있어, 삼한시대 구야국 단계에서 금관가야 시기까지의 무덤이 발견되고 있다.

금관가야의 국가적인 성장을 볼 수 있는 곳

 

김해 대성동 고분군에서는 3∼6세기에 해당하는 유구와 유물이 많이 발견되었다. 이는 이 지역이 4∼5세기에 번영한 금관가야(金官加耶)의 옛 터였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때문에 구야국(狗倻國) 또는 금관가야의 국가적인 성장 과정이나 그 특성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대성동 고분군에서 발견된 청동솥과 같은 북방계 유물이나 방격규구신경과 같은 중국제 위세품은 한군현(漢郡縣) 지역과의 교역이 활발하였음을 보여준다. 이 고분군에서는 덧널무덤의 규모가 대형화되고 철제무기류, 갑옷류, 마구류들이 다량으로 매납되는 현상이 나타나며 특히 외국으로부터 이입된 의기적(儀器的)인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이는 낙랑군(樂浪郡) 소멸 이후 김해지역이 북방민족들과 활발한 교류를 하였음을 알 수 있게 한다. 한편 현재까지 왜계(倭系) 유물로 알려진 파형동기는 당시 금관가야와 왜지역과의 정치·경제적인 상호작용에 대하여 시사하는 바가 많은 유물이다.

 

  • 주소 : [50917] 경상남도 김해시 가야의길 126(대성동)
  • TEL : 055-338-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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