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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시

수로왕릉

수로왕릉

입구에서 느껴지는 수로왕의 위신

김해 수로왕릉 입구를 들어서자 느껴지는 수로왕의 위신과 가야인들의 삶

가락국을 창건한 수로왕의 위신을 느끼다

 

수로왕의 위신이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느껴지는 김해 수로왕릉을 찾았다. 가야의 여러 나라 중 초기에 세력을 형성했던 가락국, 금관가야의 시조가 바로 김수로이며, 수로왕릉은 그의 무덤이다. 수로왕의 탄생은 대부분 아시듯이 하늘에서 소리가 들리고 황금알이 담긴 금합이 내려왔고, 알에서 태어난 아이가 수일 만에 자라 어른이 되어 왕위에 올랐고 그 왕이 바로 수로왕이라는 설화가 있다. 설화로서 그 안에 담긴 뜻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은 토착세력이 아닌 외부 이주민이 새로운 문명을 전파하며 들어왔다는 뜻이며, 아홉 부족장들에 의하여 추대되어 왕위에 오르는 것에서는 외부에서 들어온 세력이 독자적으로 나라를 건국할 만큼의 힘을 갖추지 못하고 연맹형식으로 나라를 운영했음을 뜻한다.

수로왕릉
수로왕릉

이제 김해의 상징적 문화유적으로서 가락국(AD 42~532년) 시조대왕의 수로왕릉(首露王陵)을 알아보자면 김해 김씨, 허씨, 인천 이씨의 시조이며 가락국을 창건한 수로왕을 모신 능침이다. 수로왕은 알 중에서 맨 처음 나왔다 하여 "수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왕릉 앞의 납릉정문(納陵正門)위에는 신어상(神漁像)이라 불리는 석탑을 가운데 두고 두 마리의 물고기가 마주보는 문양이 새겨져 있고, 왕릉을 보고 왼쪽에 잇는 비석의 이수에는 태양문(太陽紋)이 새겨져 있다. 이러한 문양이 인도의 야요디야에서 흔히 보이는 것과 닮아 있어,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인도 아유타국의 허왕후가 파사석탑(婆娑石塔)을 배에 싣고 왔다고 전하는 것과 연결시켜 보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고대의 낭만적 상상력을 부채질하는 좋은 자료이다.

수로왕릉
수로왕릉
수로왕릉

임진왜란의 아픔과 현재

 

김해 김씨의 시조로 서기 42년에 즉위한 수로왕은 서기 199년에 죽은 것으로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때 이 자리에 무덤을 만들었다. 이후 가야는 신라에 병합되었고, 신라 문무왕 때 이곳을 한 번 정비했으며 조선 선조 때도 한 번 개축했으나 임진왜란 때 도굴을 당하였다고 한다. 이후 인조와 고종 때 비석을 세우고 묘를 새로 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홍살문을 지나면 수로왕릉을 볼 수 있는데 별 다른 꾸밈 없는 단출한 모습이다. 왕릉 옆으로 여러 건물들이 있는데 그중 숭선전이 수로왕과 수로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있는 곳으로 봄, 가을 이곳에서 대제가 개최된다. 가야의 연표, 고문서, 제향 지낼 때 쓰는 도구 등을 전시하고 있는 작은 유물관이 있으며, 수로왕의 탄생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구지봉에서 이곳으로 옮겨왔다. 김해 수로왕릉을 찾은 방문객이라면 품격 높은 하룻밤을 보내기 좋은 김해 한옥체험관을 추천한다. 김해시에서 만들고 김해문화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시설로, 한옥 특유의 느낌과 내부는 불편함 없는 현대식으로 시설을 갖추고 있다. 김해 수로왕릉과 담장을 사이에 두고 있다.

 

  • 주소 : [50916] 경상남도 김해시 가락로93번길 26(서상동)
  • TEL : 055-330-7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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