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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군

자계서원

자계서원

선비의 정신이 느껴지는 자계서원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며 서원의 내부를 둘러보면 당시 고귀한 선비의 정신이 느낄 수 있다.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며

 

청도 자계서원은 당시 고귀한 선비의 정신이 느껴지는 곳이다. 자계서원을 얘기하기 전 운계정사에 대해 얘기를 하고자 한다. 운계정사는 자계서원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운계정사에서 탁영 선생이 글을 읽던 곳인데, 운계정사가 자계서원이 된 것은 연산군 4년 무오사화(1498)로 김일손이 화를 입자 서원 앞을 흐르는 냇물이 3일 동안 붉게 변한데서 유래하였으며, 서원 이름도 자계서원이라 부르게 되었다. 지금 남아있는 건물로는 사당인 존덕사와 제사준비를 하는 전사청, 강당인 보인당, 신문, 영귀루, 동·서재 등이다. 이 중 영귀루와 동재·서재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자계서원
자계서원

탁영 김일손 선생은 성종17년(1486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갑과(甲科)로 급제(及第)하여 예문관(藝文館)에 등용된 후 청환직(淸宦職)을 거쳐 이조정랑(吏曹正郞)이 되었다. 연산군4년(燕山君 1498년) 『성종실록(成宗實錄)』을 편찬할 때 스승 김종직(金宗直)이 쓴『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史草)에 실은 것이 화근이 되어 참화(慘禍)당하였다. 이 사건을 무오사화(戊午史禍)라 한다. 중종 반정 후(燕山君12년 1506년) 도승지와 이조판서 양관 대제학에 추증(追贈) 되었다.

자계서원
자계서원
자계서원

외형에서 느껴지는 가치..

 

건물 배치 중심에 있는 보인당(輔仁堂)은 정면5칸, 측면2칸의 고상형(高床形) 집이며 겹처마 팔작 지붕에 활주가 있다. 가구는 5량가이며 연등천장에 우물마루를 깔고 공포는 익공계 이다. 영귀루(1699년重建)는 정면3칸 측면2칸으로 자연석의 초석상에 원주를 세워 루주(樓柱)로 삼고 마루를 놓아 다시 루를 가구 하였다. 가구는 5량가로 공포는 주심포계에 익공이 절충한 모양이다. 동재의 건축기법은 그 유례가 흔하지 않으며 청도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것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보인당(輔仁堂) 주축 선에는 영귀루(詠歸樓) 와 유직문(惟直門)이라는 三門이 있고 보인당 동쪽에는 존덕사(尊德祠)와 전사청, 신도문이 따로나있다. 이 서원의 12동 건물중 영귀루와 동서양재가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영귀루 옆에는 탁영 김일손 선생께서 손수 심었다는 은행나무와 동쪽으로 탁영선생의 신도비와 절효(節孝) 김선생 정려비(旌閭碑)라 쓴 조부의 비가 있으며, 서쪽에 서원정비(書院庭碑)등이 있는 자계서원은 조선초기 역사와 건축을 볼 수 있는 곳으로 학자와 유림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 주소 : [38316]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자계서원길 13
  • TEL : 054-372-7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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