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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군

용강서원

용강서원

400년의 위국충절의 정신이 담긴 곳

임진왜란의 역사가 숨 쉬고 400년의 위국충절의 정신이 담긴 서원 청도 용강서원

혼이 담긴 경상북도기념물 제129호를 만나다

 

임진왜란의 역사가 숨 쉬고 위국충절의 정신이 담긴 청도 용강서원을 찾아갔다. 용강서원(龍岡書院) 은청도에 정착해온 밀양 박씨(密陽朴氏) 문중의 그 현조(玄祖)인 충숙공 박익(忠肅公 朴翊)과 임란14의사(壬亂14義士)를 재향하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서원 내에 있는 충열사(忠烈祠)는 임진왜란(壬辰倭亂1592-1598)때 의병을 일으켜 청도·밀양·경산 등지에서 왜적에게 큰 타격을 준 박경신(朴慶新), 경인(慶因), 경전(慶傳), 경윤(慶胤), 경선(慶宣), 선(瑄), 찬(璨), 지남(智男), 철남(哲南), 린(璘), 우(瑀), 구(球), 숙(琡), 근(瑾) 14의사를 모신 사당이다.

용강서원
용강서원

14의사는 부자, 형제, 숙질, 종형제 사이로 이 가운데 12분은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1·2·3 등에 각각 책봉되었고, 한 분은 병자호란(丙子胡亂)때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1등에 녹훈 되었다. 이에서 주목되는 점은 1개 사족(士族)가문의 부자, 형제, 숙질, 종반사이의 14명이 함께 국가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궐기하였다는 점은 역사상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을 제향하는 용강재(龍岡齋)는 1794년(정조18)이래 후손들을 위시한 지역 사림들이 사우로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있었으나 관철되지 못하다가 1816년(순조16)충열사(忠烈祠)로 개편되었다. 그러나 1868년(고종5) 훼철 되었지만 일제강점기인 1913년에 용강서당(龍岡書堂)이 건립되었고 1935년 요사, 관리사, 창고, 14의사를 봉안한 숭의사(崇義祠)가 충열사(忠烈祠)로 용강서당(龍岡書堂)이 용강서원(龍岡書院)으로 개명(改名)되었다. 그 후 1960년 강당(講堂)이 건립되었다.

용강서원
용강서원
용강서원

14의사 묘정비(廟庭碑)는 1876년 건립한 것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운 박경신 등 14명의 밀양 박씨 문중 인물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비문은 동몽교관(童蒙敎官) 김시질(金是瓆)이 찬하고 서자(書者)는 천주교도(天主敎徒) 이가환(李家煥1742-1801)이다. 임란 당시의 상황을 매우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으며 비각의 구조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생명을 돌보지 않고 분연히 일어난 밀양박씨 일족의 위국충절(爲國忠節)과 그 전통을 400년이 넘도록 면면히 이어온 후손들의 의지는 후대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이러한 후손의 의지와 위국충절의 정신이 담긴 청도 용강서원에 방문해 그 정신을 본 받아야한다. 청도 용강서원은 이서면 학산리 모산 마을 서쪽 기슭 용강 서원 내에 있다. 이서면사무소에서 이서로를 따라 팔조령 방면으로 가다 학산 삼거리에서 모산길로 접어들어 갈 수 있다.

 

  • 주소 : [38317]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모산길 45-4
  • T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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